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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2016) 현실은시궁창

책 제목에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이 책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그 '좋은 노동'이란 정부 부문도 시장 부문도 아닌, 이른바 시민사회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가리킨다. 책에서는 시민사회 부문을 크게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시민사회단체의 셋으로 분류했다. 부제로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라고 조그맣게 달아놓긴 했지만, 전반적인 노동이 가질 수 있는 '좋음'의 의미를 다룰 거라고 기대한 내게는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실제로 본인이 '좋은 노동'을 하고 있거나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처럼 그렇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그다지 해당되는 점이 없는 책이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좋은 노동'의 문제점은 사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일반적인 노동의 문제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경력이 짧은 청년이기 때문에 비숙련 노동자로 대우받고 기계 부품처럼 취급받으며 어떠한 결정권도 지니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 청년이기 때문에 열정을 강요받고 창의적이길 기대받으며 세상을 뒤바꿔놓을 만한 아이디어를 갖추기를 바란다. 어차피 그런 아이디어가 있어봤자 반영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세대 갈등과, 후진을 양성하기보다는 써먹다가 수틀리면 갈아 치우고 다른 신입을 뽑으면 된다는 선배 세대의 태도, 조직에 들어서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 어필해야 하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막상 선배들을 보면서 느끼는 "이 조직에 내 미래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불안감의 괴리, 내부 구성원들에게는 사칙을 준수하고 지시에 따를 것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법적인 근로 규정을 준수할 생각이 없는 경영진 등등. 책에서는 이런 일반적인 노동의 문제점을 피해 사회적 노동의 영역으로 진입한 청년들조차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불어 시민사회 부문의 제1목적은 이윤 창출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노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은 소득 측면에서도 곤란을 겪게 된다. 정부 부문이나 시장 부문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경력에 따른 소득 상승도 기대할 수 없고, 다른 부문으로 이직을 하려 해도 전문성 측면에서 인정을 받기 어려우며, 소득이 낮기 때문에 자기 몸 하나는 당장 건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를 대비하거나 가족을 부양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조직 또한 마땅히 이윤을 창출할 수단이 없기에 지원 사업을 따내는 데 급급하게 되며, 그런 지원 사업으로 늘어난 일거리는 인건비를 졸라매느라 적을 수밖에 없는 인원에게 과도하게 할당된다. 과중한 업무는 종사자들을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운동이나 활동의 영역보다는 노동의 영역으로 내몰게 되고, 때문에 '좋은 노동' 또한 일반적인 노동과 마찬가지 문제점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민사회 부문이 이윤보다는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점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로 그것이 시민사회 부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기에 공공선을 창출하기보다는 무임승차하려고 하는 시장 부문과, 공공선을 실현하고자 하지만 정작 어떤 것이 공공선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정부 부문에 비해, 공급자 자신이 곧 수요자이기도 한 시민사회 부문은 수요 파악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런 강점을 실제로 지니고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바로 그 정체성이 해당 조직의 구성원들이 겪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시민사회 부문을 정부 부문에 편입시키거나 지원금을 늘려 시민사회 부문의 정부 부문에 대한 의존도를 늘린다면 결국 시민사회 부문은 자율성과 유연성을 잃어버린 채 정부 부문이나 마찬가지인 조직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윤을 추구한다 해도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들조차 끊임없이 경쟁하고 도태되는 시장에서, 가치를 배제할 수 없는 시민사회 부문이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이윤을 창출한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이 특정 소비자들에게는 강점이 될 수 있겠지만 대다수 소비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공정무역이 왜 시장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는가? 다른 제품들보다 가격은 비싸면서 차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품질이 아닌 가치뿐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징징대는 것처럼 들렸다. 어떤 일이든 항상 창조적이고 유의미할 수만은 없다.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기계적인 업무는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자립 없이 의존하게 되는 순간 간섭은 불가피하고, 정부 지원금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사회적 조직들은 공무원들의 부단한 간섭과 지난한 서류작업을 피할 수 없다. 시민사회 부문으로 뛰어들기 전 자신들이 저소득과 과다 업무에 처하리라는 사실을 그들이 정말 몰랐다면 바보고, 알면서도 제 발로 들어가놓고 징징대는 거라면 철부지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이 참여했던 『노오력의 배신』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회적 노동에 종사했거나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힘들다고 징징대는 공익근무요원을 보는 현역 군인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아니라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은 결코 좋을 수가 없다. 마르크스는 이상적인 공산 사회가 이룩되면 모든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자발적으로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노동을 하든 안 하든 동일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노동을 선택할까? 소득을 창출하지 않는 노동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은 소득을 얻기 위해 거리를 청소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동기로 인해 자발적으로 거리를 청소할 수도 있다. 전자는 노동이라고 불리지만 후자는 봉사나 취미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둘의 차이점은 하고 싶을 때 시작할 수 있고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지의 여부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노동과 강제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리고 그 강제성을 부과하는 것이 바로 소득이다. 자아실현은 봉사나 취미로도 할 수 있다. 소득이 동일하다면, 강제성을 지닌 노동이 강제성 없는 봉사나 취미에 비해 더 좋을 수는 없다. 좋은 것은 노동이 아니라 소득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이상사회가 언젠가 도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사회 구조의 변혁 따위가 아니라 바로 기술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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